우간다에서 열정의 가치를 배우며

아프리카 ICT봉사단, 정유리(생명과학과 16학번)

올해는 두려움이 앞섰다. 1년 전, 탄자니아 아루샤 지역에 파견되어 ICT 교육 및 아두이노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적, 기술적 한계로 배움의 장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다수 존재함을 보았고, 내가 그 장벽을 허무는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명 깊게 다가왔다. 올해 봉사지는 우간다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말라리아의 위험성을 알려주던 신문기사에서 우간다라는 이름을 본 것 같았다. 에볼라 발병 지대와 접경해 있는 그곳은 1년을 기다린 나에게도 선뜻 선택하기 망설여졌다. 도시 빈민, 에이즈 환자, 수인성 질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의 교회에서 문화공연까지 진행한다니. 나는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곳에는 탄자니아보다 더 높은 배움의 장벽이 있을 것 같았다. 잘 갖추어진 교육 시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해외 봉사와는 달리 우간다 봉사는 동네 교회에서 일반인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봉사였다. 지식이 더 절실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진중한 고민 끝에 우간다로 향했다.

흙바닥에 설치된 흰 천막과 의자 10개 남짓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그곳은 이미 낮았던 기대보다도 더 열악했다. Amos 목사님은 이 천막에서 교육하면 오후에는 오븐 안의 쿠키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농담을 건넸다. 이곳 말고는 교육할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수업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지면 괜찮지 않을까 기대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적도의 태양열과 중고 노트북의 발열은 천막 안을 뜨거운 온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교육 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ICT 봉사단의 몰골은 마치 사막 횡단이라도 한 마냥 땀 범벅이 되어있었다. 난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첫 수업 날엔 10분마다 전기가 나가 노트북 재부팅만 열 번을 반복하질 않나, 미친 듯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천막 주변이 물바다가 되어 감전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멀티탭을 옮겼다. 그곳은 우리가 예상하고 대비한 것들을 뛰어넘는 상황을 계속해서 던져줬다.

매 실습시간마다 질문이 넘쳐났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현지인들의 열정이었다. 우간다 봉사가 다른 해외 봉사보다 더 인상 깊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무비메이커팀 오전반 그룹 E의 주민들이 인상 깊었다. 개인 노트북을 가진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다른 그룹들과 달리, 이 그룹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 Kenneth 할아버지는 알파벳을 쓰는 것도,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으셨고 많은 질문을 던지시며 본인의 속도로 낯선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익혀 가셨다.

수업이 끝난 후, Kenneth 할아버지가 갑자기 오래된 USB들고 오셨다. “나에게 오늘 수업한 설치파일을 옮겨줘요.” 무비메이커 프로그램을 USB에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선생들이 떠나고 나서 컴퓨터를 꼭 마련해서 프로그램을 깔고 나 혼자 힘으로 실습을 해보고 싶어.” 할아버지의 무비메이커 공부는 ICT 봉사팀이 우간다를 떠나도 계속될 것이다. 수업 초반엔 다른 학생들보다 배움의 속도는 느렸지만, 끈기 있게 학습해 마지막엔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질문들을 물어보시며 열정적으로 공부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KAIST에서의 학습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 나에게 있어 ‘배움’은 졸업 이수 요건을 채우고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정작 배운 내용이 내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에겐 결석하고 싶은 오늘의 수업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지식일 수 있었다. 3주간의 수업은 무비메이커 프로그램을 완벽히 이해시키기에 턱없이 짧았지만 나는 이들이 언젠간 무비메이커를 완벽하게 사용하리라 믿는다. 그들에겐 뚜렷한 배움의 목적이 있기에. 특히 Kenneth 할아버지는 자신이 일하는 비누 공장의 상품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비누 공장에 다른 직원들이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교육 기간 동안 공장 일을 할 수 없어서 더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또 다른 앱인벤터 수강생은 요식 창업을 준비하며 관련 서비스를 앱으로 만드는 중이며, 아두이노 수강생들은 교회 주차장 자동 차단 바를 적외선 센서와 모터 모듈을 통해 구현해냈다. 우리가 준비한 교육이 이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뿌듯한 한 편, 내가 더 깊이 있게 알았다면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어떤 수업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달궈진 오븐 같은 천막 안에서 배움을 찾는 그들의 열정. 그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그들의 목표의식은 아름다웠다. 그들은 단순히 수료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않고 배운 지식을 스스로 깊이 탐구하여 실생활에서 활용할 방법을 찾을 것이며, 더 나아가 주변 친구들,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말했다.

비영리 투자 기업 ‘어큐먼 펀드’의 CEO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취약계층을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 탈바꿈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자선이 아닌 자립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주간 있었던 KAIST 아프리카 ICT 봉사단의 교육 봉사가 재클린의 말처럼 자선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립을 이끌어내길 바라며, 더 나아가 우리가 가르친 그들이 미래의 파트너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매 수업 시간에 느꼈던 그들의 열정이 다소 거창해 보일 수 있는 내 기대의 가장 강한 근거이다. 다시 파트너로 만나는 그날까지 나 역시 더 열심히 배움을 익히고, 그 지식을 효율적으로 나눌 방법을 고민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어쩌면 그 뜨거운 천막 안에서 수업을 하고 또 수업을 듣던 우리는 Amos 목사님의 농담처럼 정말 오븐 속의 쿠키였을지도 모른다. 흐물흐물한 밀가루 반죽이 뜨거운 오븐을 거쳐 맛있는 쿠키가 되는 것처럼, 배움에 대한 열정이 훗날 우리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누군가로 만들어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KAIST 아프리카 ICT 봉사단이 펼친 3주간의 교육 봉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우간다에서의 추억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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