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꿈을 꾸다

KAIST 지영석 캄보디아 해외봉사단 후기

화학과 학사 14학번 안하람 학우

짙은 어둠이 깔린 한밤중에도 학교 앞 철길의 기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립니다. 해는 어찌나 빨리 뜨는지 이른 아침부터 닭이 울어대고 호산나의 꼬마 아이들이 앳된 목소리로 힘차게 태권도 기합을 넣습니다. 찬물로 세수하고 부엌으로 가 토스트를 구울 때면 어김없이 창밖으로 도마뱀과 참새가 아침 인사를 하러 찾아오고, 마키에 선생님은 굿모닝 인사하며 프라이팬에 물을 끓여 커피를 타 먹습니다. 부산하게 수업 준비를 마치고 교실로 내려가면 먼 곳에 사는 에잉라이가 일찍 도착해 ‘헬로 티처’ 하며 반갑게 인사합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기타 연주에 맞춰 손으로 박자를 만들어 꿈을 노래하고, 눈망울이 참 예뻤던 피카추 꼬마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맨발로 학교를 뛰놀다 안아달라며 저를 타오릅니다

그 추운 1월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던 낯선 그곳, 편치 않은 환경에도 사랑과 배려가 가득했던 호산나에서의 추억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에 12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를 떠나던 마지막 날 저녁에는 먼 길을 마중 나온 아이들을 보며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우리 단원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그리울 것 같아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중한 인연을 만났지만, 그 인연을 단단히 다지기에는 부족했던 이번 봉사활동.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 약속도 일상 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기에 더 늦기 전에 캄보디아 해외 봉사단을 통해 얻은 소중한 추억과 감정들을 글로 남겨 간직하고자 합니다.

2018년 11월 봉사단이 꾸려지고 우리는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졸업 직전에 봉사단을 지원해서 그런지 나이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나를 어려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단원들이라 그런지 모두 성격도 좋아서 다행히 잘 어울려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바쁜 학기 중에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하고 수업 자료를 만드느라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캄보디아 먼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상상하며 좀 더 유익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학기가 끝나고 합숙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험을 해보고, 문화교류 K-pop 댄스 연습을 했습니다. TF를 중심으로 모든 단원이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었고, 덕분에 지난 5년간 몸담았던 어느 단체보다도 트러블 없이 깔끔하게 일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쁘게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출국일이 되었고 우리는 캄보디아로 향했습니다. 1월의 캄보디아는 매우 더웠지만 건기라 그런지 습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공항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 호산나스쿨에 도착했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길거리에는 쓰레기더미가 나뒹구는 동네에 자리한 학교는 낯설기만 했습니다. 학교 내 숙소는 단수 위험 때문에 양동이로 물을 담아 샤워해야 했고 한여름 기온에서 선풍기만으로 버텨야 하는 곳이었지만, 바쁜 일정을 보내며 금세 익숙해 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불편할 수 있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삶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자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호산나의 교실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칠판이 전부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흔한 모니터나 프로젝터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냉방 시설도 없어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육 환경은 다소 열악할지 몰라도 호산나의 아이들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제겐 사소할 수도 있는 과학 키트 하나하나가 큰 재미이자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도구였고, 작은 배움에도 호기심을 가지고 열의가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창의력과 호기심 대신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택해 야자시간마다 잠과 싸우며 공부하던 지난 고등학교 생활을 떠올리면, 항상 밝게 웃으며 공부하는 이 아이들이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캄보디아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것은, 환경만 다를 뿐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장난꾸러기 같아 보여도 어려운 개념도 잘 이해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생에 처음 해보는 프레젠테이션 발표에 밤을 새워 연습해 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또래 학생들에 비하면 가진 지식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학생들의 잠재력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몰랐을 흥미로운 과학과 IT의 세계, 프레젠테이션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경험. 어쩌면 미래 아시아의 잡스가 꿈을 싹틔웠을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환경이 꿈의 경계를 그어버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재능을 나누면 아이들은 그 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꿈을 꿀 수 있다고.

지난 대학 생활 동안 전국 방방곡곡 봉사활동을 참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오래 준비해서 해외로 봉사를 다녀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캄보디아를 다녀온 게 믿기지 않아 꿈을 꾼 것 같기도 하지만, 종종 안부를 묻는 우리 반 아스나와 왓따이와 연락하며 다시 실감하곤 합니다. 이전에는 굳이 해외까지 나가서 봉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이번 봉사를 통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화와 환경이 있고 그들이 필요한 도움도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국제적 안목으로 다양한 세계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3개월간 우리 봉사단원들 정말 고생 많았고, 이 친구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똑똑한 건 물론 하나같이 착하고 매력 넘치는 우리 단원들 덕분에 덥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졸업하면 서로 얼굴 보기 힘들겠지만, 각자 열심히 살아가다 가끔 호산나에서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이은하 선생님을 비롯한 글로벌 리더십 센터 직원분들과 지영석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봉사 단원들, 그리고 호산나 학교에 축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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