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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만나다

2008년 4월 8일, 소유즈 12호가 차가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이 우주선에는 36,206명의 지원자 중 최후의 1인으로 선정된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 타고 있었다.

국제정거장 ISS에서의 9박 10일동안 18가지 우주과학실험 연구를 수행, 대한민국이 부여한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 한국을 36번째 우주인 배출국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Fly me to the moon’의 한 소절을 불러주던 30세 젊은이는 어느새 40대가 되어 모교 후배들과 마주한다. KAIST 기계공학과 학사 97학번, 석사 01학번,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 02학번 이소연 동문(41세)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교 3~4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후배들의 인사를 듣자마자 이거 하나만큼은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제가 KAIST 생활을 하며 얻은 가장 큰 보물은 저를 우주인 이소연이 아닌, 동고동락한 동료로서 좋아해 주며 부정적인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해주는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더 솔직하게 저에게 조언해 줄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 너 요즘 좀 그렇더라? 했을 때 욱하기보다는 내가 좀 그렇지?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어린 나이에 과학고등학교와 KAIST 캠퍼스에서 함께 생활하며 ‘인간 이소연’으로 인연을 맺은 친구들 덕분에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소연 박사의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여러분들 주변의 친구들을 둘러보세요.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습니다. 자신을 이유 없이 비난하는 사람(쭉정이)과, 크리티컬한 메시지를 주는 사람(알곡)을 구별해야 합니다. KAIST에 재학 중인 후배들은 후자인 친구들을 오랜 시간 자신의 주변에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우리에겐 긴 삶의 여행이 남아있으니까요.”

오프닝 멘트부터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학생들은 진로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이는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수학하고, 박사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바이오및뇌공학과로 진학한 선배에 대한 궁금증에서였다.

“저도 공부하는 동안 저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박사과정 논문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생물학 지식이 필요하여 생명과학과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들었고, 회로를 만들고 칩을 움직이게 하려면 회로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여 전자과 전공수업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렇게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다 보니 제가 공부하는 분야가 기계공학인지 바이오인지 전자과인지 재료공학인지 모호해졌고, 궁극적으로 제가 공학도인지, 과학자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공부했습니다.”

4가지의 전공을 넘나들며 힘들게 공부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우주인이 되는 밑거름이 될지 20대의 이소연은 몰랐을 것이다.

“우주인이 되기에는 딱 맞춤이었습니다. 우주에서 수행해야 하는 18가지 실험이 모두 다른 분야에 속했는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들었던 다양한 전공 지식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약점이 가장 큰 강점이 된 거죠.”

우주에 다녀온 지 만 10년이 지나 지금, 이소연 박사는 우주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봤던 순간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내가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은 아닐까? 나의 편협한 기억 속에 우주를 다녀온 경험을 한쪽에 넣어두고 가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늘 걱정입니다.”

그녀가 우주정거장에서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불렀던 장면은 그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오디오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부른 이 노래는 이후 무중력 상태에서 둥실거리며 국민에게 손을 흔들던 우주인 이소연의 모습과 더해져 더욱 몽환적인 여운을 남겼다.

“제가 바라본 지구는 새파랗고 영롱했습니다. 그 찰나 같은 순간에도 지구 안에서는 부유한 사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 등 수억 명의 사람들의 복잡한 삶이 진행되고 있었겠지요. 그 모든 복잡함을 사라지게 할 만큼 지구는 아름다웠습니다.”

2018년 10월 26일 남산 젝시가든에서 열린 ‘KAIST 발전 후원의 밤’에 참석해 우주탐사 1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이소연 박사
지금까지도 우주복이 몸에 딱 맞을 수 있게 신체를 유지한 것이 지난 10년간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기념 스피치를 시작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은 지구로 돌아온 뒤 2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근무하다 2014년 퇴사하며 MBA에 진학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당시 저에게는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정책 대학원, 해외봉사 등등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다른 나라 우주인의 대부분이 종국적으로 경영과 관련된 분야에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인 저도 언젠가는 관리자나 경영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 MBA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명의 우주인이었지만 전 세계에서는 500여명의 우주인 중 한 명이었다. 연구자들과 시민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공학박사를 거쳐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소연 박사에게 MBA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비즈니스를 배우면서 저라는 사람은 비즈니스도 이공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학부에서부터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과 함께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서럽기도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두 세 시간이면 읽을 책 한 권을 저는 밤을 새워 겨우 읽곤 했습니다.”

MBA 졸업식에서 이소연 박사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KAIST에서 3번의 학위를 수여하는 동안에는 정작 단 한 번도 졸업식장에 가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저에게 졸업식이란 빅 딜(big deal)이 아니었습니다. 고생하며 MBA 학위를 받고 보니 KAIST에 다니던 시절 이만큼 감동받고 감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모교에 대한 미안함에 오늘 이 인터뷰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KAIST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고 저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삶은 때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동안 본인이 쌓아온 것들이 든든한 자산이 될 거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후배들에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소연 동문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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